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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화

혼자 밥 먹는 그대에게 -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이동건이 엄정화와 밥을 못 먹는 이유는?

by 파크라이터 2014.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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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바쁘다보면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그냥 한끼 굶고 말거나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울 수도 있고, 햄버거나 김밥, 짜장면, 도시락 같은 걸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마땅치 않을 때, 근무교대로 식사도 교대로 해야할 때, 밥때를 놓쳤을 때, 사람들과 얘기하지 않고 그냥 밥만 먹고 싶을 때, 혼자 여행중거나 외근이나 출장 갔을 때, 사람들은 혼자서 밥을 먹습니다. 
그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늘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2007)

Love Now 
7.2
감독
정윤수
출연
엄정화, 박용우, 이동건, 한채영, 최재원
정보
드라마 | 한국 | 116 분 | 2007-08-15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네 남녀의 위험한 크로스 연애 이야기입니다. 
패션 컨설턴트 유나(엄정화)와 호텔리어 민재(박용우) 부부.
건설사 부사장인 영준(이동건)과 조명 디자이너 소여(한채영) 부부. 
두 커플-네 남녀는 함께 살고 있는 자기 배우자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에게 점점 빠져듭니다.  
 

 

 

 

 

네 명의 캐릭터 모두 매력이 있지만 저의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박영준(이동건 분)이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모임같은 거 무지 싫어하고 심지어 사람들과 마주 않은 자리에서조차 피곤하다며 팔 괴고 잠을 청합니다. 유나의 직업인 패션 컨설팅을 '남이 옷입는데 참견하는 거'라고 말할 정도로 싸가지도 없고 시니컬하죠. 한마디로 사람들 만나 친목도모하는 것도 싫고 남이 나한테 참견하는 것도 싫은 그런 인간입니다. 
 
 
영준은 패션 컨설팅을 해주러 찾아와 한참을 기다린 유나에게 고작 10분만 시간을 내줍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앞에 유나가 있는데도 초밥 도시락을 '혼자' 먹으며 미팅을 하죠. 

 

그후, 영준은 Bar에서 유나를 다시 만나게 되고 억지로 합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 속에 영어단어를 많이 섞어쓰다는 이유로 유나에게 심한 면박을 주죠. 조사 빼고 다 영어를 쓰냐며 유나가 민망할만큼 지적질을 해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의 지적질 속에 그의 작은 욕망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영준 
클라이언트하고 가끔 점심은 먹어줍니까?
아, 그쪽 업계 사람들은 점심이 아니라 런치를 먹겠군.
일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할테고.
사랑이 아니라 러브를 하겠네요?

여기에 대한 유나의 대답도 걸작이지만 이 글에선 영준이 선택한 단어들에만 집중해보겠습니다.
영준의 관심사는 '점심 같이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정말로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에 관심있다고는 보지 말죠. 그는 단지 영어를 섞어쓰는 유나의 허세스러움이 '재수없어'보여 지적질을 한 것 뿐이니까요.)

아무튼, 영준이 유나의 허세를 지적질할 만한 사람인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그는 상대방(특히 유나)에게 건방지고 배려심없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타인과 소통할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디서 지적질이야! 너나 잘하세요~~)
 
 

 
단적인 예로, 그는 유나와 사랑을 나눌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그는 재수없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깨버립니다. 

 


영준
스포츠 한 게임 뛰었다고 더티하게 굴지나 마. 
유나
 뭐라고?
영준
이거저거 해달라고 엉겨붙지나 말라고. 

이게 막 사랑을 시작하고픈 여자한테 할 소립니까??!!
 
 
영화에서는 이처럼 싸가지 없는 영준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친절한 씬도 등장한다. 

영준
(운전기사에게) 나 어때요? 여자들이 보기에...
운전기사
밥맛이죠 뭐. 
영준
네?
운전기사 
재수도 없고...
영준
너무 하는 구만...

 
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영준은 '재수없고 밥맛인' 인간입니다.
(여기서 밥맛이 과연 부정적인 의미로 써도 되는 단어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겠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캐릭터가 '밥맛'이라는 걸 운전기사를 통해 알게된 영준은 살짝 멘붕이 옵니다. 
자기가 밥맛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죠.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 맡에서 아내에게도 물어봅니다. 

영준
나 말이야... 그렇게... 밥맛이야?

 
윽2

다음날, 영준은 유나의 사무실로 전화를 겁니다.
지난밤 유나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안 받은 것에 잔뜩 화가 난 상태여서 유나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퍼붓죠. 

영준
전화 안 할 거면서 리턴콜한다고 녹음은 왜 해?
괜히 사람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
앞으론 약속을 지키도록.
바빠서 이만.  (전화 끊는다)

유나
(열 받아 전화 다시 걸어서)
박영준 이사님. 지금 식사하시고 계시죠?
사무실에서 혼자.
그것도 코 앞까지 서류 들이대고 스시 드시고 계시죠?
자신의 모습 한 번 보시죠, 박영준 이사님.
스스로 얼마나 처량하고 외로운 신세인 지 깨닫게 될 거예요.
그럼 바빠서 이만. 


유나의 말에 멍해지는 영준.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처량한 신세인지를 깨닫습니다. 
  
자신의 외로운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 유나에게 영준은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죠. 유나 또한 영준이 재수없고 만나면 불쾌한데도 영준의 대시를 매몰차게 끊어내지 못합니다. 영준같은  나쁜 남자의 매력에 끌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영준의 깊은 외로움을 알아채고 그게 계속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준과 유나. 그들의 배우자인 소여과 민재.
네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배우자에게서 찾을 수 없었던 매력을 가진 상대방에게 더욱 깊게 빠져들고 위험하고 아찔한 밀회를 계속 해나갑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버리고 진정 사랑하는지도 모를 사람을 찾아 떠나기엔 네 사람 모두 주저합니다. 지금 자신과 살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네 사람은 잠시동안 거리를 두기로 한다. 하지만 거리를 둘 수록 그리움과 서운함은 더욱 커지는 법. 
어느 외로운 밤, 영준은 또 다시 유나에게 전화를 건다. 


영준
안받을 줄 알았는데
유나
그냥 끊을까?
영준
승질머린 여전하네. 잘 지내?
유나
그럼
영준
혼자야?
유나 
내가 왜 혼자야? 남편이 늘 옆에 있는데.
박영준 옆에 늘 아내가 있는 것처럼. 
영준 
고맙네. 내가 깜빡할 때마다 일깨워줘서.
목소리 들었으니까 됐다. 끊어. 
유나 
잠깐만......
혼자 밥 먹지 마. 
영준 
.......​
같이 먹어줄 거 아니면 참견도 하지 마.
끊어. 


영준과 유나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단둘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영화의 결말을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영준이 자주 쓰는 말중에 "바빠서 이만."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쁘다보면 상황이 안되면 밥은 혼자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혼자 밥먹는 걱정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냐는 것입니다. 혼자 밥먹는다고 외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당신을 걱정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외로운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당신과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제일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집밖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 밥 먹을까 걱정을 받는 사람은 사소한 그 말에 덜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어떤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화 제목과 같은 질문에 겨우 42%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더군요.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다고 대답한 이들이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것이 씁쓸한 현실입니다. 하여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밥 먹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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