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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화

지금은 사랑할 시간 - <인터스텔라> 앤 해서웨이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by 파크라이터 2014.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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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고싶고 보고 싶었던 <인터스텔라>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 보러 가기 전 영화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놀란 감독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아."라고 말했었는데 역시나 실망은 커녕 놀란 감독에 대한 존경심만 더 커졌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구요.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속 장면이나 대사들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그런 영화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인터스텔라>는 단연 그런 영화였습니다. 

 

 


인터스텔라 (2014)

Interstellar 
8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매튜 매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케이시 애플렉
정보
SF | 미국 | 169 분 | 2014-11-06

 

 


<인터스텔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식량과 대기오염으로 희망이 사라진 지구, 아버지는 인류의 새 터전을 찾기 위해 우주로 떠납니다. 

 


영화 초반은 톰과 머피라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쿠퍼가 우주로 떠나기 전 자식들과 보내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곧 쿠퍼에게 우주로 떠나로는 '모험에의 호출'이 전해지고, 쿠퍼는 자신의 자식들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결국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우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죠.

 

 

 


 
사실 이 영화가 저에게 더 가슴 깊이 와 닿았던 것은 초반에 나오는 이 대목, 
'사랑하는 자식들을 두고 먼 길을 떠나려는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아버지는 외양선원이셨습니다. 
컨테이너를 잔뜩 싣고 오대양 육대주를 떠는 화물선의 통신장이셨죠.
한 번 출항하면 짧게는 6개월 길면 1년 만에 집에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날에도 아버지는 원래 외국에 계셨어야 했는데 마침 일정이 바뀌어서 연락할 시간도 없이 급하게 귀국했는데 저의 어머니가 막 저를 출산을 하러 병원으로 향하던 길이셨답니다. 마치 둘째 아들의 출산을 지켜보려 시간에 딱 맞춰 오신 것처럼요.^^;

둘째 아들의 탄생 순간을 지켜보긴 했지만 아버지는 또 얼마 후 배를 타러 떠나셔야 했겠지요. 하지만 그 당시 어렸던 제가 아버지의 상황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두 세살 때쯤인가, 아버지가 양손에 장난감 선물을 가득 안고서 귀국했는데
제가 "아저씨 누구세요...?" 하고 무서워하면서 엄마 다리 뒤에 숨어버리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참 많이 속상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커서야 들었습니다. 
커서 그 얘기를 들으면서는 저도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날마다 아버지 얼굴을 보고 자라지 못한 어리고 철없는 아이가 충분히 했을 법한 반응이었지만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아빠자 된 지금에서야 온전히 이해가 되더군요. 그렇게 저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와 멀리 떨어진 채로 자라야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편지를 쓸 줄 알게 되면서부터는 아버지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죠. 지금도 장롱 속에는 그때 주고 받은 수많은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언젠간 꼭 정리를 해보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저는 초등학교 시절과 사춘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께서 멀리 외국에서 고생하고 계시니 말썽 안 피우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그렇게 착하게 살았지요. ^^;
제가 그렇게 본성이 착한 놈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인가, 어느날 귀국하신 아빠와 엄마가 나누시던 대화를 얼핏 엿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엄마가 하신 말씀 중에.

 

"생명수당이 왜 줄어들었어요?"

 

그런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월급엔 '생명수당'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생명수당이란 말 그대로도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대비해 돈을 더 준다는 그런 겁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저는 알게 된 것이었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죽을 위험을 떠안고, 배를 타셨던 겁니다. 
왜냐구요?
그야 너무도 당연한 이유였죠.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고, 이제는 아버지가 된 제가 희망이 사라진 지구, 자식 세대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죽을 수도 있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먼 우주로 떠나는 아버지 쿠퍼를 지켜보는 심정은 참 가슴 속 깊이 뭉클해졌더랬습니다. 


음......

저의 아버지도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 쿠퍼도 우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박사
현실을 직시해요.
우리 태양계에선 더 이상 해답이 없소.
쿠퍼
그럼 어떻게 세상을 구하죠?
박사
이 세상을 구할 순 없소.
이 곳을 떠나야 하지. 
쿠퍼
내겐 애들이 있어요.
박사
그들을 위해 떠나요.

자식 세대의 미래와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해 떠나야한 하는 쿠퍼.
하지만 아직 어린 딸 머피도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내는 게 싫습니다. 
이미 결심을 굳힌 쿠퍼와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안하려 하죠.
그런 딸과 힘겹게 작별인사를 해야만 하는 쿠퍼도 가슴이 아픕니다. 


쿠퍼
머피, 아빠랑 얘기 좀 해. 
아빠 떠나기 전에 기분 풀어. 
(중략)
머피
언제 돌아올지 모르잖아요.
쿠퍼
꼭 돌아올게. 
머피
언제?
쿠퍼
머피. 사랑한다. 영원히.


딸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면서 쿠퍼는 머피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합니다. 
자기 것과 똑같이 생긴 것을 말이죠.

쿠퍼
봐. 지금은 아빠 시계랑 똑같은 시간이지만
아빠가 돌아왔을 때 시간이 달라져 있으면...

(그러면서 시간에 대해서 뭐라고 했던 거 같던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이놈에 기억력!!)

아무튼!
이 영화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쿠퍼가 사랑하는 딸 머피에게 시계 선물을 준 건 의미심장합니다..
영화의 주요한 설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니까요.
물이 가득한 어떤 행성에서의 한 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이라는 설정도 그렇구요
(이 부분은 인셉션을 연상시키기도 하죠^^)
영화의 주요한 배경인 우주선 인듀어런스 호의 모습도 자세히 보면 시계 모양입니다. 
12개로 나눠진 선체가 계속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습이...


(이 우주선 이름이 '인듀어런스 호'인 것에도 나름 작명의 숨은 의미가 있죠.
여기선 길어져서 언급 안하지만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보세요.^^)

그렇게 딸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우주로 떠난 쿠퍼는 지구로부터 전해져오는 영상 메시지를 보는 게 유일한 낙입니다. 처음엔 삐쳐저 영상 편지도 안보내는 딸 머피 때문에 서운해하던 쿠퍼가 나중에 훌쩍 커버린 머피가 보내온 영상 편지를 보게 됩니다.  그 영상편지를 보면서 울던 쿠퍼의 모습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리네요. 인류를 위한다는 대의를 위해 떠나온 미션수행에 자꾸만 약해지는 쿠퍼의 모습을 보며 동료 비행사인 아멜리가 묻습니다. 

아멜리아
세상을 구하러 간다고 말 안했어요?
쿠퍼
아니. 
부모가 되면 꼭 해야 할 게 생겨. 
아이가 겁먹지 않게 지켜줘야 하지.

하지만 쿠퍼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결국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동료 비행사
당신 가족보다 더 큰 그림을 봐야죠.
쿠퍼
내 가족뿐 아니라 수백만 가족을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쿠퍼는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향한 여행을 계속하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직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결말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시계 장면은 이 글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우주로 떠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동안 어느새 머피는 훌쩍 자라 아버지가 떠났던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됩니다. 그리고 어릴 적 아버지와 살던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떠나던 날 남겨주었던 손목시계를 발견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시계는 왠지 고장난 듯 보입니다. 
7:30분쯤에서 멈춰버린 시계인데, 이상하게 초침만 계속 움직입니다. 
마치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흘러가게 하고 싶은 듯이, 아니면 다시 되돌리고 싶은 쿠퍼의 심정을 대변하듯이 말입니다. 

시간을 다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쿠퍼는 우주로 떠나지 않고 딸의 곁에 머물러 있었을까요?

멈춰버린 시계의 시간은 7시 30분쯤입니다. 
이 시간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대체로 아침 7시 30분은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각자 일터로 학교로 떠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저녁 7시 30분은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을 만나고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7시 30분은 대체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인 겁니다. 
그 시계가 하필이면 7:30분 쯤에 멈춰버린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쿠퍼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물론 이것이 놀란 감독이 의도했던 바인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계속 움직였다 멈췄다 움직였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시계의 초침은 마치 무슨 신호인가를 보내는 듯 하지요.
다행히도 머피는 그것이 모르스 부호라는 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더 다행히도, 그것이 아버지로부터 온 사랑의 메세지라는 걸 알아냅니다. 
영화 속에서 그 모르스 부호는 다른 단어로 표현되지만 (결국 같은 의미지만)
저에게 그 부호가 전하는 메세지는 이런 것인 듯 합니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지 말고

영화 제목인 <인터스텔라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의미합니다. 
영화의 과학 자문을 한 '중력의 대가' 킵 손 어르신이 1988년도에 쓴 논문
'Wormholes in Spacetime and Their Use for Interstellar Travel'
웜홀을 어떻게 인터스텔라 여행에 활용할 것이냐는 가능성에 관한 연구에서
<인터스텔라>라는 제목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인터스텔라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기 보다
그냥 굉장히 먼 거리의, 태양계를 벗어난 그런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영화 속 동료 우주비행사인 아멜리아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멜리아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죠.

'인터스텔라'가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굉장히 먼 거리를 뜻하더라도
딸 머피를 향한 쿠퍼의 사랑은 그 굉장히 먼 거리를 뚫고 와 딸에게 사랑한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지어 그곳이 인터스텔라만큼 머나먼 우주일지라도
우리는 사랑한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야만 한다. 

그리고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어도
우리가 해야할 것은 사랑뿐이다.

그러나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면,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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